한국교회 신앙의 유산 ‘무척산기도원’을 아십니까?

by 관리자 posted Mar 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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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ews.sarang.org/newswoori/newswoo...ction=W005

 

 

 

 

 

 

서울에서 4시간여를 달려 경남 김해 경내에 이르면, ‘견줄만한 산이 없다’는 이름의 무척산이 있다. 무척산기도원은 일제의 핍박과 신사참배의 횡포가 성행하던 1940년대, 핍박을 피해 기도처를 찾는 이들이 모여 시작되었다. 그리고 점차 영남지역 기도의 중심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가장 융성할 때는 1200~1300명이 동시에 집회에 참석할 만큼 영적으로 뜨거운 곳이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으로 오는 외지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기도원을 방문하기 위한 이들이었고, 산 아래 버스정류장 이름도 ‘무척산 기도원 정류소’일 만큼 지역 명소로 꼽혔다.


그러나 근래에 한국교회는 전반적으로 기도가 약화되는 상황 속에서 접근성의 어려움 등으로 갈수록 무척산기도원 방문자가 줄어들게 됐다. 특히, 올 여름 정기 집회에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 폭우까지 겹치며 참가인원이 70여명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처럼 기도원을 찾는 이들이 줄고, 설상가상으로 이곳을 관리하는 식수들 다수가 기도원을 떠나는 등 기도원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현재는 연세가 지긋하신 강도사님 한분이 관리자로 섬기고 계시고, 기도원을 섬기시고 현재는 기도자로 남아계신 79세의 할아버지 한분만이 상주하고 계신 상황이었다. 대예배당과 5개의 소예배실, 숙소들을 포함해 10동이 넘는 시설을 이제 단 2명이 관리하야 하는 것이다. 이들 마저도나이가 들어 많은 일을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무척산 기도원은 맞이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엔 기도원 주변의 등산로를 통하는 일부 등산객에 의해 갖은 민원이 제기돼, 김해시장을 포함한 공무원단 70여명이 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유는 기도원 뒤편 공터호숫가에 세워뒀던 낙후된 간이 창고와 식당 옆의 보관 창고였다. 이들 창고에 대해 철거명령이 떨어졌고, 이에 따라 기도원은 다시금 여러 농기구와 자재들을 보관할 창고건립이 시급하게 됐다. 또한, 십 수 년간 주방에서 섬기던 봉사자가 기도원을 떠나면서, 방문객들을 위한 식사제공이 어려워진 것도 기도원의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관계로 모든 물품을 산 아래에서 인력으로 운송해야 함에 따라 자체 재배하는 일부 식자재를 제외한 연료, 식료품, 건축자재 등 모든 물품의 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올 여름, 이런 무척산 기도원을 우리 교회 대학부가 방문했다. 이번 대학부의 방문은 현재 무척산기도원이 처한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비록 적은 인원이지만, 조금이나마 땀으로 봉사하여 기도원을 돕기 위한 목적이었다. 방문 기간 내내 계속된 비로 진입로 잡초제거와 장작정리 등 비교적 간단한 작업 밖에 할 수 없었지만,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에 작은 관심과 실질적인 섬김을 시작하는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역을 펼친 것으로평가하고 있다. 

글 사진 대학부 제공 

연리지 같이 회복케되고 하나되는 우리되길… 
염대훈 / 대학8부 

두 달 전 직장을 그만 두고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고 있던 즈음 8월 18일부터 21일까지 대학부 무척산기도회가 진행된다는 광고를 보았다. 이미 수련회와 농활을 다녀오기도 했고, 대학부에 속한 지체들 중 나이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선뜻 참여를 결정하기는 어려웠다. 그 뒤로 시간이 훌쩍 지나 기도회에 대한 내용이 잊혀져갈 무렵, 담당 교역자님의 호출로 인해 참여를 결정하게 됐다. 


무척산에서의 4일 내내 새벽과 저녁에 기도회와 예배를 드렸다. 새벽예배란 나에게 늘 비몽사몽함이 가득한 시간들이었지만, 그곳에서는 전에 없이 맑은 정신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특히, 창세기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말씀해 주신 목사님의 설교는 수없이 읽은 부분임에도 새롭게 느껴졌다. 설교 뒤에 이어지는 기도회에서는 그간 내 주변 울타리 안을 벗어나 못했던 기도 제목들의 범주가 우리 교회를 넘어 조국과 한국교회로 넓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무척산기도원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항일운동 중 항거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이곳에서 모여 구국기도를 드린 것을 기념하며 해방직후 지어졌다고 한다. 이곳은 식민지였던 나라, 그리고 전쟁으로 갈라진 조국을 위해 뜨거운 피와 눈물의 기도가 가득했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낙후된 시설 때문에 이제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어져가고 있다는 설명을 들을 때는 안타까움이 우리를 감쌌다. 그리고 우리 대학부의 무척산기도원 방문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뤄지면서, 우리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성도들도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기도 제목이 생겼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은혜를 잔뜩 받고 기도원에서 내려오는 길에 연리지라는 나무를 봤다. 원래 한 뿌리에서 자라나 두 나무로 갈라졌다가 태풍으로 인해 두 나무를 이어주는 가지들이 생겨 다시 합쳐지게 됐다는 나무였다. 이 나무를 보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 그리고 그 사이를 유일하게 이어주시는 예수님을 떠올리게 됐다. 어려움 속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시 화목케되고 하나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